김재형 교수(서울대
법대) |
Ⅰ. 서론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함으로써 대법원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에 27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또는 결정이 나왔는데, 이는 종전에 비하여 2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그중 민법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7건이다. 민법의 구석구석에 있는 문제에 관한 것인데도 대법원은 매우 상세한 논거를 밝히고 있다. 2011년도에 전국법원에 접수된 소송사건은 6,287,823건인데, 그중 민사사건이 4,351,411건으로 69.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형사사건은 약 60만건이 줄어든 반면, 민사사건은 100만건 이상 늘어났다. 앞으로도 민사사건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율적인 영역, 즉 사적 자치의 원칙에 의하여 규율되는 영역이 증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2012년에 나온 많은 판결들 중에서 민사재판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하여 선례로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판결들을 소개함으로써, 그 의미를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Ⅱ. 물권적 청구권의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권의 성부 1. 대판(전) 2012. 5. 17, 2010다28604에서는 물권적 청구권의 경우에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권이 성립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다수의견은 소유자가 그 후에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이제 등기말소 등을 청구할 수 없게 된 경우에 등기말소 등 의무자에 대하여 그 권리의 이행불능을 이유로 민법 제390조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 위 법규정에서 정하는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은 본래의 채권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그 내용이 확장되거나 변경된 것으로서 발생하나, “위와 같은 등기말소청구권 등의 물권적 청구권은 그 권리자인 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면 이제 그 발생의 기반이 아예 없게 되어 더 이상 그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한다. 종전에 무권리자가 타인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임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친 후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였는데, 제3자의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되어 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 경우 무권리자에 대하여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판결들이 있었는데(대판 2008. 8. 21, 2007다17161; 대판 2009. 6. 11, 2008다53638), 이 판결들을 변경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별개의견은 청구권 발생의 기초가 되는 권리가 채권인지 아니면 물권인지와 무관하게 이미 성립한 청구권에 대하여는 그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고, 이를 허용하는 것이 구체적 타당성 면에서 옳다고 한다. 2. 물권적 청구권에 대해서는 물권편에서 규정하고 있다(제213조, 제214조 등). 물권적 청구권은 물권에 기한 청구권이기 때문에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채권편의 규정이 준용된다고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명문의 규정은 없다. 따라서 물권적 청구권의 상대방이 그 이행을 할 수 없는 경우에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물권적 청구권의 경우에 제390조의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물권적 청구권이 있는 경우에 물권자가 수령지체에 빠지거나 상대방이 그 이행을 지체하는 때에는 물권적 청구권이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수령지체나 이행지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물권법에 별도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수령지체나 이행지체에 관한 채권편의 규정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행지체나 채권자지체 또는 변제에 관한 규정이 물권적 청구권에 준용된다고 해서 이행불능으로 인한 전보배상청구권도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물권적 청구권은 물권에서 나오는 것으로, 물권을 상실하면 물권적 청구권도 소멸한다(대판(전) 1969. 5. 27, 68다725). 이행불능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채권의 존속을 전제로 채무자의 채무가 이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경우에 전보배상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소유권 등 물권 자체가 소멸한 경우에는 물권적 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지 그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가 위법하게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고 A와 B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함으로써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되도록 하였으므로 피고의 위법한 행위로 말미암아 원고가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제750조), 이행불능을 이유로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할 실익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별개의견에서는 채권의 효력으로 인정되는 전보배상책임을 물권적 청구권에서 부정한다면, 이는 오히려 물권에 대한 보호를 채권보다 더 소홀히 하는 셈이 되어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소유권 등 물권에는 대세적 효력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물권자가 채권자보다 강력한 권리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소유자의 방해자에 대한 권리가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권리보다 항상 강력한 것은 아니다. 가령 채권자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는 경우에 원상회복의 범위는 소유자가 점유자에 대해서 갖는 권리보다 더 클 수 있는 것이다. 물권적 청구권의 내용은 법률의 규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고, 채권자에게 인정되는 모든 권능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Ⅲ. 공동 명의로 가등기를 마친 채권자들의 매매예약완결권의 귀속형태 1. 대판(전) 2012. 2. 16, 2010다82530에서는 수인의 채권자가 채권 담보를 위해 채무자와 채무자 소유 부동산에 관하여 자신들을 공동매수인으로 하는 1개의 매매예약을 체결하고 공동명의로 가등기를 마친 경우에, 채권자들이 매매예약완결권을 어떻게 행사하여야 하는지 문제되었다.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채권자 중 1인이 단독으로 그의 지분에 관하여 매매예약완결권을 행사하고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2. 기존의 판례는 “1인의 채무자에 대한 수인의 채권자의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그 수인의 채권자와 채무자가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수인의 채권자를 권리자로 하는 1개의 매매예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른 가등기를 마친 경우에, 매매예약의 내용이나 매매예약완결권 행사와 관련한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언제나 수인의 채권자가 공동으로 매매예약완결권을 가진다고 보고, 매매예약완결의 의사표시도 수인의 채권자 전원이 공동으로 행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대판 1984. 6. 12, 83다카2282). 이를 ‘공동행사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한 가등기에 관한 사안에서 공유자가 그 지분을 단독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복수의 권리자가 소유권이전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가등기를 마쳐 둔 경우 그 권리자 중 한 사람은 자신의 지분에 관하여 단독으로 그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도 있다(대판 2002. 7. 9, 2001다43922, 43939). 이는 ‘단독행사설’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 판결은 수인의 채권자가 공동으로 매매예약완결권을 가지는 관계인지 아니면 채권자 각자의 지분별로 별개의 독립적인 매매예약완결권을 가지는 관계인지는 매매예약의 내용에 따라야 한다고 하고 있다. 먼저 다수의 권리자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매매예약완결권의 행사를 공유물의 처분행위로 보아 공유물의 처분행위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유자 전원이 행사하여야 하는지 문제된다. 공유자는 그 지분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으므로(제263조), 매매예약완결권을 준공유한다고 보는 경우에도 그중 1인이 그 지분 범위 내에서 본등기절차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매매예약완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여야 하는지 여부는 이것이 공유물의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여러 채권자들이 공동으로 매매예약을 하고 가등기를 한 경우에도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매매예약에 정한 대로 예약완결권의 귀속형태나 행사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채권자 중 한 사람이 당사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매매예약완결권을 항상 공동으로 행사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반한다. 채권자들 공동명의로 그 부동산에 가등기를 마쳤다고 해서 갑자기 매매예약완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해야 하는 관계로 전환된다고 볼 수 없다. 가등기에서 매매예약완결권의 귀속형태나 행사방법에 관하여 달리 공시하고 있지 않은 이상 당사자들이 약정한 내용에 따라서 매매예약완결권의 귀속형태나 행사방법이 정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가등기에서 지분을 특정하여 등기를 한 경우에는 각각의 채권자에게 그 지분이 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가등기가 담보목적의 가등기인지 아니면 순위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가등기인지에 따라 결론을 달리 할 이유가 없다. Ⅳ. 관습상의 법정지상권과 가압류 1. 대판(전) 2012. 10. 18, 2010다52140은 토지 또는 그 지상 건물의 소유권이 강제경매로 인하여 그 절차상 매수인에게 이전된 경우에 관습상 법정지상권의 성립 요건인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이 동일인 소유에 속하였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시기는 매각대금 완납시가 아니라 압류 또는 가압류의 효력 발생시라고 하였다. 이 판결은 먼저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의 성립에 관하여 압류가 있는 경우에는 압류의 효력이 발생하는 때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는데, “부동산강제경매절차에서 목적물을 매수한 사람의 법적 지위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절차상 압류의 효력이 발생하는 때를 기준으로 하여 정하여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매의 목적이 된 부동산에 대하여 가압류가 있고 그것이 본압류로 이행되어 경매절차가 진행된 경우에는 애초 가압류가 효력을 발생하는 때를 기준으로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이 동일인에 속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한다. “강제경매개시결정 이전에 가압류가 있는 경우에는, 그 가압류가 강제경매개시결정으로 인하여 본압류로 이행되어 가압류집행이 본집행에 포섭됨으로써 당초부터 본집행이 있었던 것과 같은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2. 종래 대법원 판례에서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토지와 건물이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였다가 건물 또는 토지가 매매 그 밖의 원인으로 각각 소유자가 다르게 될 때에 그 건물을 철거한다는 특약이 없는 한 건물소유자는 토지소유자에 대하여 그 건물을 위한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한다.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진 원인이 강제경매 또는 국세징수법에 의한 공매인 경우에도 관습상 법정지상권이 성립한다. 그런데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토지와 건물 중 어느 하나가 처분될 당시에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이 동일인의 소유에 속하였으면 족하고 원시적으로 동일인의 소유였을 필요는 없다(대판 1995. 7. 28, 95다9075, 9082). 이 판결에서 건물에 대한 가압류가 있는 경우에 토지와 지상 건물이 언제 동일인 소유이어야 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종전에 강제경매의 목적이 된 토지 또는 그 지상 건물의 소유권이 강제경매로 인하여 그 절차상의 매수인에게 이전된 경우에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이 동일인에 속하였는지 여부는 그 매수인이 소유권을 취득하는 매각대금의 완납시를 기준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도 있었고(대판 1970. 9. 29, 70다1454; 대판 1971. 9. 28, 71다1631), 가압류 시를 기준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대판 1990. 6. 26, 89다카24094). 그러나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가압류 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하여 판례를 통일하였다. 부동산에 가압류등기를 하면 채무자가 당해 부동산에 관한 처분행위를 하더라도 이로써 가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대판 2011. 11. 24, 2009다19246 참조). 이와 같은 가압류의 처분금지효에 따라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가 있고 그것이 본압류로 이행되어 경매절차가 진행된 경우에 목적물을 매수한 사람의 법적 지위는 그 절차상 가압류의 효력이 발생하는 때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그러므로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에서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이 동일인에 속하였는지 여부’는 매각대금 납부시가 아니라 가압류의 효력이 발생하는 때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가압류 당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랐고, 그 후 원고가 소외 1, 2로부터 토지를 매수하고 소외 3으로부터 건물을 매수하여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동일하게 되었다. 위 가압류에 기하여 본압류로 이행되고 경매절차가 진행되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건물에 대한 가압류채권자는 가압류 당시 건물을 위한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이 성립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 그 후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동일하게 되었다고 해서 가압류채권자의 기대를 보호할 필요는 없고, 위 가압류에 기하여 진행된 경매절차에서 건물을 매수한 사람도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못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3. 한편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가 많다. 관습상 법정지상권을 인정한 취지는 건물이 철거되는 것을 막고, 건물로서의 가치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이 사회경제상 바람직하다는 데 있다. 그러나 동일인에 속하였던 토지와 건물 중 어느 하나를 매매나 증여 등으로 양도할 때에는 임대차계약을 맺거나 지상권을 설정하는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는 건물 철거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한다. 따라서 매매 등으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진 경우에 건물의 소유자를 위하여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인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제도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관습상 법정지상권은 등기 없이 토지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대판 1971. 1. 26, 70다2576), 부동산거래의 안전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일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입법론이나 해석론으로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일반적으로 부정하는 견해를 채택한다면,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에 관한 수많은 판례법리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건물에 대한 강제경매 등으로 인하여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진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지상권이나 임차권을 설정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법률의 규정에 의한 지상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민법 제366조는 저당권에 기한 경매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지는 경우에 법정지상권이 성립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강제경매나 공매의 경우에 이 규정을 준용하는 규정을 신설하여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준용규정이 신설되기 전에는 강제경매 또는 공매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지는 경우에 제366조의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법정지상권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저당권의 실행으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지는 경우와 이익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압류와 압류에 관한 이 판결의 법리는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이 폐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Ⅴ. 채권자대위권의 행사로 인한 처분금지효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계약해제 1. 민법 제405조 제2항은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에는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사실을 통지받은 후에 그 권리를 처분함으로써 대위권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대판(전) 2012. 5. 17, 2011다87235에서는 채권자대위권의 행사로 인한 처분금지효가 계약의 해제에도 미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을 두고 민법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사실 자체만으로는 권리변동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이를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소멸시키는 적극적인 행위로 파악할 수 없다. 둘째,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이다. 셋째, “채권이 압류·가압류된 경우에도 압류 또는 가압류된 채권의 발생원인이 된 기본계약의 해제가 인정되는 것과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2. 기존의 판례는 채무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계약이 채무불이행으로 해제되거나 또는 합의 해제된 경우에 제405조 제2항에서 정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먼저 합의 해제에 관하여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그 매매계약을 합의 해제하여 채권자대위권의 객체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소멸시켰다 하더라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제3채무자 역시 그 계약해제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하였다(대판 1996. 4. 12, 95다54167; 대판 2007. 6. 28, 2006다85921). 다음으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해제에 관하여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사실을 통지받은 후에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이 언제나 채무자가 그 피대위채권을 처분하는 것에 해당하므로 이를 가지고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그 결과 제3채무자 또한 그 계약해제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27343). 그러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해제에 관한 위 판례를 변경하여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은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로써 합의 해제는 처분에 해당하지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해제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게 되었다.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제3채무자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채무자의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처분’이라는 법개념의 왜곡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양창수, “채권자대위에 의한 처분금지효가 제3채무자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에도 미치는가?”, 민법연구 제7권, 2003, 365면), 이 견해가 대법원 판결로 나타난 것이다.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은 채무자가 적극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처분 개념에 포섭되지 않는다. 기존의 판례는 압류 또는 가압류의 경우에 기본계약의 해제를 허용하는 것과 균형이 맞지 않고, 제3채무자의 해제권 행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타당하다. 다만 이 판결은 중요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즉, “형식적으로는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채무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해제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단지 대위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계약해제인 것처럼 외관을 갖춘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판례는 처분의 개념을 형식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Ⅵ. 압류된 채권의 상계 1. 대판(전) 2012. 2. 16, 2011다45521은 채권압류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가 압류채무자에게 반대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한 요건에 관하여 판단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채권압류명령 또는 채권가압류명령(이하 채권압류명령의 경우만을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을 받은 제3채무자가 압류채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상계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기 위하여는, 압류의 효력 발생 당시에 대립하는 양 채권이 상계적상에 있거나, 그 당시 반대채권(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것이 피압류채권(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반대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과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2. 민법 제498조는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는 그 후에 취득한 채권에 의한 상계로 그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에는 채권압류 또는 채권가압류(이하에서는 가압류와 압류를 편의상 압류라고 한다)의 명령을 가리킨다(민사집행법 제223조, 제280조). 따라서 이 규정의 문언에 의하면 ‘제3채무자가 압류명령 이후에 새롭게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로써 그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제3채무자가 압류명령 이전에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하는 것은 이 규정에 따른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인지 문제되어 왔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전부명령이 있기 전에 두 채권이 상계적상에 있었으면 전부명령 후에 한 상계로써 전부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하였다(대판(전) 1973. 11. 13, 73다518). 그 후 대법원 판결은 압류 당시에는 상계적상에 있지 않더라도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는 경우”에는 상계적상에 도달한 후에 상계를 함으로써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수정되었는데(대판 1982. 6. 22, 82다카200), 이를 ‘변제기기준설’이라고 한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도 이를 따르고 있다. 3. 반대의견은 민법 제498조의 문언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즉 이 규정의 반대해석상 제3채무자가 그 이전에 이미 취득하여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는 이 규정에 의하여 금지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규정에서 ‘제3채무자가 압류명령 이후에 새롭게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규정이 제3채무자가 압류명령 이전에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제3채무자가 압류명령 이전에 취득한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 규정에 관한 문언해석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의견은 상계의 담보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즉, 상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는 채무자의 변제자력이 충분하지 못한 때에도 자기의 자동채권에 관하여는 확실하고도 충분한 변제를 받은 것과 같은 이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는 ‘사실상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지적하듯이 상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가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로 담보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갖는 것인지는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관한 민법 규정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상계의 담보적 기능에서 곧바로 이 문제의 결론을 선험적으로 도출할 수는 없다. 민법의 규정이나 그 해석을 통하여 상계의 담보적 기능이 강화될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약화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결국 반대채권으로써 상계할 수 있는 제3채무자와 지급을 금지하는 명령을 신청한 채권자 중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압류가 있는 경우에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상계적상에 도달한 제3채무자를 압류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보호하는 것은 제3채무자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변제기를 기준으로 구분하여 제3채무자를 압류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보호할 것인지 여부를 정하는 다수의견을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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