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011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9) 형법각론

 

신동운 교수(서울대 로스쿨)

1. 집단적 근로거부와 업무방해죄의 위력

2011.3.17. 2007482 전원합의체 판결, 공 2011상, 865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P공사는 필수공익사업장이고 Q노조는 P공사의 노동조합이다. P공사와 Q노조는 단체교섭을 진행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Q노조는 총파업일정을 결의한 가운데 단체교섭을 계속하였으나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이에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은 직권중재회부결정을 하였다.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직권중재 기간 중에는 파업이 금지된다. 그러나 갑을 비롯한 Q노조 집행부는 총파업을 지시하였다. 이에 Q노조 조합원들은 전국의 사업장에 출근하지 아니한 채 일제히 업무를 거부하여 P공사는 총 135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

검사는 갑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여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갑은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갑은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근로자들의 집단적 근로제공 거부를 ‘위력’으로 보고 여기에 정당행위의 이론을 적용하던 종전의 판례를 폐기하는 데에 견해가 일치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집단적 근로제공 거부를 ‘위력’에서 제외할 것인지 일부 포함되는 경우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견해가 나뉘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 따라 후자의 입장을 취하여 갑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판결요지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고,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3) 판례평석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파업)에 대해 종전의 판례는 단순한 노무거부인가 물리적 실력행사인가를 묻지 않고 무조건 이를 ‘위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왔다. 일단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을 인정한 다음, 정당한 쟁의행위인가를 따져서 위법성조각 여부를 결정하였던 것이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라고 할지라도 ‘위력’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구성요건 단계에서부터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부정할 수 있다는 보다 유연한 입장으로 판례를 변경하였다.

본 판례는 업무방해죄와 관련하여 노동쟁의행위에 대한 탄력적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범죄론체계의 관점에서 보면 위법성조각으로부터 구성요건해당성으로 초점이 전진배치됨에 따라 착오론의 주장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당행위에 대한 착오는 형법 제16조에 의하여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허용될 것이다. 이에 대해 위력 자체에 대한 착오는 그러한 제한 없이 형법 제13조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2. 성매매업소와 업무방해죄의 업무

2011.10.13. 20117081, 공 2011하, 2402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P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다. A는 사창가 골목에서 윤락녀를 고용하여 Q성매매업소를 운영해 온 업주이다. 갑은 조직원들과 함께 A의 업소에 나타나 영업을 방해하였다. 검사는 갑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였고, 항소심도 이를 유지하였다. 갑은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라 함은 직업 또는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으로서 타인의 위법한 침해로부터 형법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하므로, 어떤 사무나 활동 자체가 위법의 정도가 중하여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에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3) 판례평석

성매매업소의 업무가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종래 하급심에서 견해가 나뉘고 있었다. 대법원은 본 판례를 통하여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대법원은 성매매처벌법이 성매매의 알선이나 장소제공행위를 처벌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성매매업소의 업무는 그 위법의 정도가 중하여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3. 야간주거침입절도죄의 야간의 의미

2011.4.14. 선고 2011도300, 2011감도5, 공 2011상, 977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어느 날 15:40경 A가 운영하는 P모텔에 침입한 다음, 같은 날 21:00경 그곳에 설치되어 있던 A소유의 LCD모니터를 절취하였다. 검사는 갑을 야간주거침입절도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야간주거침입절도죄를 무죄로 판단하고 갑을 방실침입죄와 절도죄의 실체적 경합범으로 처단하였다. 검사는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형법은 제329조에서 절도죄를 규정하고 곧바로 제330조에서 야간주거침입절도죄를 규정하고 있을 뿐, 야간절도죄에 관하여는 처벌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아니하다. 이러한 형법 제330조의 규정형식과 그 구성요건의 문언에 비추어 보면, 형법은 야간에 이루어지는 주거침입행위의 위험성에 주목하여 그러한 행위를 수반한 절도를 야간주거침입절도죄로 중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주거침입이 주간에 이루어진 경우에는 야간주거침입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3) 판례평석

야간주거침입절도죄는 일본형법이나 독일형법에 없는 것으로 우리 형법이 독자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범죄유형이다. 야간주거침입절도죄의 구성요건표지인 ‘야간’이 주거침입에 걸리는가, ‘절도’에 걸리는가 또는 양자 모두에 걸리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본 판례에서 검사는 ‘야간’이 ‘절도’에만 걸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야간’의 표지가 ‘주거침입’에만 걸린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그 논거로 (가) 우리 형법이 야간에 이루어지는 주거침입행위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나) 우리 입법자가 주간절도와 야간절도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본 판례는 야간주거침입죄의 ‘야간’과 관련되어 제기되던 논란을 대법원이 유권적으로 매듭지은 예로서 주목된다.

4. 익명조합과 횡령죄

2011.11.24. 20105014, 공 2012상, 78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부동산 전문가 갑은 A, B, C와 “P부동산을 매수하여 전매한 후 부동산투자금 및 전매이익금을 정산한다”는 요지의 약정을 맺었다. 갑은 A로부터 받은 5천만원을 포함하여 10억 2천만원에 P부동산을 매수하였다. P부동산은 갑과 B, C의 명의로 등기되었다. 이후 갑은 P부동산을 D에게 23억 5천만원에 매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A는 P부동산의 매수와 전매를 갑에게 전적으로 일임하여 관여하지 않았다. 이익분배에 이르자 갑은 A로부터 받은 5천만원이 단순 차용금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투자금과 전매이익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검사는 갑을 횡령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였다. 갑은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갑이 횡령죄의 보관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조합재산은 조합원의 합유에 속하는 것이므로 조합원 중 한 사람이 조합재산의 처분으로 얻은 대금을 임의로 소비하였다면 횡령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법리는 내부적으로는 조합관계에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조합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이른바 내적 조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합 또는 내적 조합과는 달리 익명조합의 경우에는 익명조합원이 영업을 위하여 출자한 금전 기타의 재산은 상대편인 영업자의 재산으로 되는 것이므로 그 영업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고 따라서 영업자가 영업이익금 등을 임의로 소비하였다고 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 한편 어떠한 법률관계가 내적 조합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익명조합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들의 내부관계에 있어서 공동사업이 있는지, 조합원이 업무검사권 등을 가지고 조합의 업무에 관여하였는지, 재산의 처분 또는 변경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한지 등을 모두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부동산투자와 관련한 횡령죄의 사안을 보여주고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위의 판단기준을 제시하여 갑의 사안을 분석한 다음, “사정이 이와 같다면 비록 피해자가 이 사건 토지의 전매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일정 금원을 출자하였다고 하더라도 이후 업무감시권 등에 근거하여 업무집행에 관여한 바도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아무런 제한 없이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므로,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의 약정은 조합 또는 내적 조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익명조합과 유사한 무명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이 조합과 익명조합의 구별기준으로 공동사업 유무, 업무관여 여부, 재산처분에의 전원 동의 등의 표지를 예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5. 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

2011.1.20. 200810479 전원합의체 판결, 공 2011상, 482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P인쇄기를 A에게 1억 3500만원에 양도하기로 하여 A로부터 1, 2차 계약금 및 중도금 명목으로 합계 4360만원 상당의 원단을 제공받아 이를 수령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갑은 P인쇄기를 자신의 채권자인 B에게 기존 채무 8400만원의 변제에 갈음하여 양도하였다.

검사는 갑을 배임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갑이 A에게 인쇄기를 인도하여 줄 의무는 민사상의 채무에 불과할 뿐 타인의 사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7 대 5로 견해가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동산의 이중매매는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은 동산의 이중매매도 부동산 이중매매와 동일하게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에는 각각 여러 가지 보충의견이 제시되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 따라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이 사건 매매와 같이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기는 계약의 경우(민법 제563조), 쌍방이 그 계약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여야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매매의 목적물이 동산일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그 목적물인 동산을 인도함으로써 계약의 이행을 완료하게 되고 그때 매수인은 매매목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매도인에게 자기의 사무인 동산인도채무 외에 별도로 매수인의 재산의 보호 내지 관리 행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동산매매계약에서의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아니하고 이를 타에 처분하였다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재산권의 이중매매에 대해 원칙적으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확인하였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 대법원은 확립된 판례로써 배임죄의 성립을 긍정해 왔다. 이러한 태도를 동산, 나아가 재산권 일반에까지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법리로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해 대법원은 견해가 나뉘었는데, 다수의견은 후자를 지지하였다. 배임죄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한계선에서 문제되는 일이 많다. 본 판례에서 전개된 다양한 의견들은 우리 사회에서 배임죄가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대법관들이 보여준 숙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판례 전문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6. 보이스피싱 현금인출과 장물취득죄

2010.12.9. 20106256, 공 2011상, 170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본 판례는 2010년도에 선고된 것이지만 2011년도 판례공보에 공간되어 이하에 소개함. 이하 같음.] 갑은 A에게 자기 명의의 P통장과 현금카드 및 비밀번호를 돈을 받고 팔았다. 갑은 P통장이 누군가에 의해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갑은 본범의 범행으로 돈이 P통장 계좌로 입금되면 이중으로 발급받은 직불카드를 이용하여 본범보다 먼저 돈을 인출하려고 마음먹었다. 갑은 P통장 발급 금융기관에서 SMS 문자서비스로 P계좌에 1000만원이 입금되었음을 알려주자, 미리 발급해 놓은 직불카드를 이용하여 140만원을 인출하였다.

검사는 갑을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 사기방조죄, 장물취득죄로 기소하였다(이하에서는 장물취득죄 부분만을 소개함). 제1심법원은 갑이 취득한 것은 피해자의 예금채권일 뿐 영득죄에 의하여 취득된 물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같은 이유를 들어 항소를 기각하였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제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결론에 있어서 장물취득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장물취득죄에 있어서 ‘취득’이라 함은 장물의 점유를 이전받음으로써 그 장물에 대하여 사실상 처분권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스피싱 사기의 본범에게 피해자가 현금을 예금계좌로 송금하고 사기방조범이 임의로 현금을 인출한] 사건의 경우 본범의 사기행위는 [방조범]이 예금계좌를 개설하여 본범에게 양도한 방조행위가 가공되어 본범에게 편취금이 귀속되는 과정 없이 [방조범]이 피해자로부터 [방조범]의 예금계좌로 돈을 송금받아 취득함으로써 종료되는 것이다.

그 후 [사기방조범]이 자신의 예금계좌에서 위 돈을 인출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예금명의자로서 은행에 예금반환을 청구한 결과일 뿐(대법원 2009. 3. 19.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본범으로부터 위 돈에 대한 점유를 이전받아 사실상 처분권을 획득한 것은 아니므로, [방조범]의 위와 같은 인출행위를 장물취득죄로 벌할 수는 없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최근 크게 문제되고 있는 보이스피싱 사건의 형사법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 자신의 통장을 판매하는 행위는 본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도 사기죄의 방조범에 해당한다. 그런데 통장을 판매한 사기방조범이 자기 명의 계좌에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돈이 입금된 것을 알고 이를 찾아서 임의로 처분하는 행위를 장물취득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인지 문제된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분석과정을 거쳐 장물취득죄 성립을 부정하는 결론에 이른다. 먼저, 대법원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피해자가 현금을 사기방조범의 계좌로 송금하는 행위가 재물을 교부한 것인지 재산상 이익을 교부한 것인지에 대해 살핀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피해자를 중심으로 결정하라는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판례의 사안에서 피해자는 사기방조범 명의의 예금계좌로 현금을 송금하고 있다. 이것은 피해자가 재물을 교부한 것으로 교부방법이 송금의 형식을 취하였을 뿐이다. 재물이 교부되었으므로 피해자의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채권(재산상 이익)은 애당초 문제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사기방조범이 피해자의 예금채권을 취득하였다고 한 제1심과 항소심의 판결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곧바로 장물취득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장물취득죄의 ‘취득’은 장물의 점유를 이전받아 장물에 대한 사실상의 처분권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점유를 이전받으려면 먼저 선행자에게 장물의 점유가 있었음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중요한 법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요지는 “본범의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은 피해자로부터 사기방조범의 예금계좌로 돈이 송금되었을 때 종료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기범행의 본범이 송금된 돈에 대해 점유를 가지게 되었는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기범행의 본범에게 장물의 점유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사기방조범은 장물의 점유를 이전받을 수가 없다. 결국 사기방조범이 자기 명의 계좌의 돈을 함부로 인출하더라도 장물취득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7. 집행관 사무직원과 뇌물죄의 공무원

2011.3.10. 201014394, 공 2011상, 787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특가법은 공무원의 뇌물죄를 가중처벌하고 있는데, 1억원 이상의 뇌물수수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된다. 한편 형법상 배임수재죄는 일반인에게 적용되는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갑은 P법원 집행관사무소의 사무원으로 부동산 경매절차에서 입찰봉투를 접수하여 입찰함에 넣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갑은 A의 부탁을 받고 경매 부동산 Q호텔의 최저매각가격을 알아내어 이를 알려주었다. A는 최저가격에 근접한 가격으로 Q호텔을 낙찰받았고, 갑은 그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

검사는 갑을 특가법위반죄(뇌물)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갑이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특가법위반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그 대신에 배임수재죄를 인정하여 5년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검사는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형법 제129조 내지 제132조 및 구 변호사법(생략) 제111조에서의 ‘공무원’이라 함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의한 공무원 및 다른 법률에 따라 위 규정들을 적용할 때에 공무원으로 간주되는 자 외에 법령의 근거에 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이에 준하는 공법인의 사무에 종사하는 자로서 그 노무의 내용이 단순한 기계적·육체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 자를 말한다.

집행관사무소의 사무원은 (중략) 공무원으로 취급되는 집행관의 지위와 비슷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지방법원에 소속되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판의 집행, 서류의 송달 그 밖에 법령에 따른 사무에 종사’하는 집행관(집행관법 제2조)과 달리 그에 의해 채용되어 그 업무를 보조하는 자에 불과할 뿐(집행관규칙 제21조 제1항), 그를 대신하거나 그와 독립하여 집행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는 않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뇌물죄와 관련한 ‘공무원’의 개념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뇌물죄의 공무원은 (가) 법령의 근거에 기하여, (나) 국가 등의 사무에 종사하되, (다) 노무의 내용이 단순히 기계적·육체적인 사람은 제외된다. 법원의 집행사무와 관련된 법령을 보면, 집행관은 집행관법에 근거를 두고 국가의 사무에 종사하므로 공무원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집행관사무소의 사무원은 집행관규칙에 근거하여 ‘집행관’의 업무를 보조한다. 집행관규칙이라는 법령의 근거는 발견할 수 있지만 종사하는 사무가 국가의 사무가 아니라 집행관의 업무이기 때문에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여기에서 공무원인 집행관의 업무가 곧 국가의 사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형벌법규의 유추적용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거를 들어서 집행관의 업무를 국가의 사무로 확장해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본 판례는 자칫하면 법원 주변의 부조리에 대해 사법부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제시하는 논리의 일관성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본 판례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입법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은 크다고 생각된다.

8. 변호사단체와 무고죄의 공무소

2010.11.25. 201010202, 공 2011상, 76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변호사 A가 운영하는 P법무법인의 사무장으로 근무했던 사람이다. 갑은 “변호사 A가 거액의 대가를 받기로 하고 Q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B를 매주 2회씩 거의 1년여 동안 접견을 하며 외부와의 연락병 역할(일명 비둘기)을 하는 등 변호사로서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하였으니 징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허위진정서를 R지방변호사회에 접수시켰다.

검사는 갑을 무고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였다. 갑은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갑은 R지방변호사회가 무고죄에서 말하는 ‘공무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무고죄에서 말하는] ‘징계처분’이란 공법상의 특별권력관계에 기인하여 질서유지를 위하여 과하여지는 제재를 의미하고, 또한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란 징계처분에 있어서는 징계권자 또는 징계권의 발동을 촉구하는 직권을 가진 자와 그 감독기관 또는 그 소속 구성원을 말한다.

변호사에 대한 징계처분은 형법 제156조에서 정하는 ‘징계처분’에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고, 구 변호사법 제97조의2 등 관련 규정에 의하여 그 징계 개시의 신청권이 있는 지방변호사회의 장은 형법 제156조에서 정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변호사회가 ‘공무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무고죄를 인정한 점에서 다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무소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무를 수행하는 관청을 말한다. 변호사는 공무원이 아니다. 공무원이 아닌 변호사들로 구성된 변호사회가 어떻게 해서 공무소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다음의 논리구성에 의하여 변호사단체가 공무소에 해당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가) 변호사법과 관련 법률은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징계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무부의 변호사징계위원회에서 변호사징계를 결정하도록 하고 이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행정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련의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나) 이것은 변호사의 공익적 지위에 기인하여 공법상의 특별권력관계에 준하여 징계에 관하여도 공법상의 통제를 하려는 의도라고 보인다. (다) 따라서 변호사에 대한 징계처분은 형법 제156조에서 정하는 ‘징계처분’에 포함된다. (라) 변호사법 등 관련 규정에 의하여 변호사 징계 개시의 신청권이 있는 지방변호사회의 장은 형법 제156조에서 정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포함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다수의 변호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변호사의 공익적 지위를 강조하여 변호사단체에 ‘공무소’의 지위를 부여한 본 판례는 앞으로 변호사들의 윤리규범 확립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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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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