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운 교수(서울대 로스쿨)
|
1. 국제형법과 국제사법의 차이 (2011.4.28. 2010도15350, 공 2011상, 1107)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P차량은 한국인 A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미국의 M리스회사와 캘리포니아주의 법에 따라 체결한 리스계약의 목적물이다. Q차량은 미국인 B가 M리스회사와 체결한 리스계약의 목적물이다. 갑은 P차량과 Q차량이 미국에서 리스이용자가 리스기간 중에 임의로 처분한 것임을 알면서 이를 수입하였다. 검사는 갑을 장물취득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였고, 항소심도 이를 유지하였다. 갑은 불복 상고하였다. 갑은 상고이유로 다음의 점을 주장하였다. (가) 미국의 M리스회사와의 리스는 환매특약부 매매 내지 소유권유보부 매매에 해당한다. (나) P, Q차량의 미국 내 임의 처분행위는 미국법상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 본범이 성립하지 아니하므로 갑에게 장물취득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장물죄의] 본범의 행위에 관한 법적 평가는 그 행위에 대하여 우리 형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우리 형법을 기준으로 하여야 하고 또한 이로써 충분하므로, 본범의 행위가 우리 형법에 비추어 절도죄 등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인정되는 이상 이에 의하여 영득된 재물은 장물에 해당한다.” “타인의 재물인가 등과 관련된 법률관계에 당사자의 국적·주소, 물건 소재지, 행위지 등이 외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국제사법 제1조 소정의 외국적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제사법의 규정에 좇아 정하여지는 준거법을 1차적인 기준으로 하여 당해 재물의 소유권의 귀속관계 등을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국제형법과 국제사법이 교착하는 사안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제형법은 국제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형법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가 함께 관련되어 있는 사안에서 적용해야 할 형법을 의미한다. 국제형법은 소위 ‘외국적 요소’가 들어 있는 형사사건이 등장할 때 논의된다. ‘외국적 요소’가 들어 있는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국제사법이 적용된다. 국제사법의 접근방법에 따르면 관련된 여러 나라의 법 가운데 어느 한 나라의 법을 준거법으로 정하고 이에 따라 재판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국제형법의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제형법의 경우에는 ‘외국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해도 준거법의 결정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형사재판은 우리나라 규범체계의 실현이므로 외국의 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이 본 판례에서 “[장물죄의] 본범의 행위에 관한 법적 평가는 그 행위에 대하여 우리 형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우리 형법을 기준으로 하여야 하고 또한 이로써 충분하다”고 판시한 것은 바로 이 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형사처벌 자체가 아니라 소유권의 귀속 등 민사적 문제가 등장하는 경우에는 통상의 국제사법 이론이 적용된다. 장물죄의 성립이 문제될 경우 먼저 본범이 영득범죄로 인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영득범죄임을 확인하려면 목적물의 소유권 귀속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때 사안에서 다른 나라가 관련되어 ‘외국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면 판단의 준거법을 결정해야 한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국제사법의 규정에 좇아 정하여지는 준거법을 1차적인 기준으로 하여 당해 재물의 소유권의 귀속관계 등을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이 점을 확인하고 있다. 2.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2011.4.14. 2010도10104, 공 2011상, 960)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한의사 갑은 목디스크 때문에 찾아온 환자 A에게 예전에 봉침(蜂針)시술을 받은 일이 있다는 점만 확인하고 부작용을 설명하지 아니한 채 봉침시술을 하였다. 시술 이후 약 10분 경과 후 A는 구토, 발진, 협심증 등을 일으켰다(아나필락시 쇼크). A는 이후 대학병원에서 3년 이상 벌독에 대한 지속적 면역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는 갑을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여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였다. 갑은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갑의 설명의무위반과 A의 상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피해자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봉침시술을 받아왔었고 봉침시술로 인하여 아나필락시 쇼크 및 면역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이르는 발생빈도가 낮은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 갑이 봉침시술에 앞서 피해자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반드시 봉침시술을 거부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 갑의 설명의무 위반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3) 판례평석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한의사 갑의 설명의무 불이행이 주의의무위반에 해당함을 인정하고 있다. 주의의무가 인정된다면 이제 검토해야 할 것은 설명의무 불이행과 상해의 결과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이다. 대법원은 과실범의 인과관계 판단과 관련하여 상당인과관계설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인과관계설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논란되고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피고인 갑이 봉침시술에 앞서 피해자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반드시 봉침시술을 거부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봉침시술에 앞서 피해자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였다 하더라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소위 적법한 대체행위의 이론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법한 대체행위의 이론이란 주의의무를 다하였더라도 동일한 결과가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형법적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이론이다. 본 판례는 적법한 대체행위의 이론을 대법원이 상당인과관계라는 이름으로 원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업무상 과실치상죄와 직접적 원인관계 (2011.4.28. 2009도12671, 공 2011상, 1092)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때에는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하여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어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갑은 자동차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횡단보도를 통행하는 A를 충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A가 부축하던 B가 밀려 넘어져 상해를 입었다. 당시 B는 횡단보도 바깥을 통행하고 있었다. 검사는 갑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B가 횡단보도 바깥에 있어 보행자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소기각판결을 선고하였다. 검사는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은 항소를 기각하였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차의 운전자가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른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하고 이로 인하여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면 그 운전자의 행위는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6호에 해당하게 될 것인바, 이때 횡단보도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행위와 그 상해의 결과 사이에 직접적인 원인관계가 존재하는 한 위 상해가 횡단보도 보행자 아닌 제3자에게 발생한 경우라 해도 단서 제6호에 해당함에는 지장이 없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교통사고와 관련한 인과관계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보통의 경우 사용하는 상당인과관계라는 표현 대신에 ‘직접적인 원인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직접적인 원인관계가 무슨 의미인지 밝히고 있지 않으나 인과관계를 확장하는 결론의 점에서 보면 조건설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그 동안 대법원이 교통사고와 관련한 인과관계를 제한할 때 ‘직접적 인과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해 오던 것에 비교하면 본 판례의 표현은 다소 이례적인 용어 사용이라고 생각된다. 4. 통신비밀의 보호와 정당행위 (2011.3.17. 2006도8839 전원합의체 판결, 공 2011상, 846)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방송사 기자인 갑은 소위 X파일을 입수하였다. X파일은 구 국가안전기획부 내 정보수집팀이 모 대기업 고위관계자 A와 모 중앙일간지 사주 B 간의 사적 대화를 불법 녹음하여 생성한 녹음테이프와 녹취보고서이다. X파일에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 대기업의 여야 후보 진영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 문제 및 정치인과 검찰 고위관계자에 대한 이른바 추석 떡값 지원 문제 등을 논의한 대화가 담겨 있었다. 갑의 보도 움직임을 알게 된 A와 B는 법원에 보도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실명 거론 및 원음의 직접 방송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받아내었다. 갑은 법원의 가처분에도 불구하고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뉴스프로그램에 실명과 원음을 사용하여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하였다. 갑은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로 기소되었다. 제1심은 정당행위를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정당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인정하되 형의 선고를 유예하였다. 갑은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공익을 위한 보도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러나 갑의 사안이 정당행위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뉘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 따라 갑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불법 감청·녹음 등에 관여하지 아니한 언론기관의 그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에 관한 보도가 통신의 비밀이 가지는 헌법적 가치와 이익을 능가하는 우월적인 가치를 지님으로써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다면, 그 행위는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수 있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대법원이 통신비밀의 보호와 언론보도의 관계에 관한 정당행위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예로서 주목된다. 대법원은 종래 정당행위의 판단기준과 관련하여 (1)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2)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3)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4) 긴급성, (5)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해 오고 있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통신비밀의 보호와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 적용가능성을 긍정하면서, 특별히 이 분야에 대해 (1) 목적의 정당성, (2) 수단의 상당성, (3) 침해의 최소성, (4) 이익형량의 우월성이라는 네 가지 판단척도를 새로이 제시하고 있다(지면관계로 상세한 소개는 생략함). 구체적 사안에 대한 결론에 있어서는 대법원의 견해가 나뉘었지만, 전원합의체의 일치된 의견으로써 제시된 새로운 판단기준은 앞으로 언론보도의 한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5. 언론인의 취재활동과 정당행위 (2011.7.14. 2011도639, 공 2011하, 1672)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70대의 노인 A는 거액의 P부동산을 B에게 증여하였다. 이후 A는 증여의 효력을 다투며 P부동산의 반환 요구와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갑은 모 신문사 기자이다. 갑은 A의 조카 C로부터 B가 A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과 A의 상속인들이 P부동산을 되찾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에 임하였다. 갑은 B를 찾아가 A를 방치한 것과 증여세를 포탈한 것이 범법행위가 아니냐고 말하면서 미리 준비한 인터뷰(서면질의) 협조요청서와 서면질의 내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취재에 응하지 않으면 내가 조사한 내용을 그대로 다음 주 신문, 방송에 보도하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시간을 주는데 응하지 않으면 불리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B는 갑을 고소하였다. 검사는 갑을 협박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였고, 항소심도 이를 유지하였다. 갑은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신문기자인 피고인이 고소인에게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취재에 응해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아니할 경우 자신이 조사한 바대로 보도하겠다고 한 것이, 설령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협박죄에서의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사 작성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보도하기 위한 것으로서 신문기자로서의 일상적인 업무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어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라고 봄이 상당하다.” (3) 판례평석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언론인의 취재활동이 정당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 “취재불응시 보도하겠다”는 말이 설령 협박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갑의 행위가 “신문기자로서의 일상적인 업무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형법 제20조는 업무로 인한 행위를 특정하고 있고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를 보충적인 위법성조각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대법원의 판시는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언론인의 취재활동 전반에 대해 일률적으로 ‘업무로 인한 행위’라고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점이 위 표현을 사용한 대법원의 의중이었다고 선해(善解)한다면 보충성의 원칙을 암시하는 위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6. 상습절도미수와 미수감경의 배제 (2010.11.25. 2010도11620, 공 2011상, 81)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본 판례는 2010년에 선고된 것이지만 2011년도 판례공보에 공간되었으므로 여기에 소개한다.]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은 “상습으로 형법 제329조 내지 제331조의 죄 또는 그 미수죄를 범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6항은 누범자에 대해 “그 죄에 정한 형의 단기의 2배까지 가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갑은 A의 식당에 몰래 들어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A의 처 B 소유의 가방 지퍼를 열었다. 그 순간 갑은 A에게 발각되었다. 갑은 비슷한 전과가 13회 있는데, 이번의 범행은 누범기간중에 일어난 것이다. 한편 A와 B는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갑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 검사는 갑을 특가법위반죄(상습절도미수)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유죄를 인정하고 형법 제25조 제2항에 기한 미수감경과 형법 제54조에 기한 작량감경을 하여 갑을 징역 2년에 처하였다. 검사는 특가법상의 상습절도미수에는 형법 제25조 제2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항소를 기각하였다. 검사는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특가법 제5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상습절도죄는 상습절도미수 행위 자체를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정하고 그에 관하여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법정하고 있는 점, 약취·유인죄의 가중처벌에 관한 특가법 제5조의2 제6항에서는 일부 기수행위에 대한 미수범의 처벌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는 반면 상습절도죄 등의 가중처벌에 관한 특가법 제5조의4에서는 그와 같은 형식의 미수범 처벌규정이 아닌 위와 같은 내용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점을 비롯한 위 규정에 의한 상습절도죄의 입법 취지 등을 종합하면,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이 적용되는 상습절도죄의 경우에는 형법 제25조 제2항에 의한 형의 미수감경이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3) 판례평석 형법은 제29조에서 “미수범을 처벌할 죄는 각 본조에 정한다.”라고 하고, 제25조 제2항에서 “미수범의 형은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은 “상습적으로 형법 제329조부터 제331조까지의 죄 또는 그 미수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미수범 처벌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특가법 제5조의2는 약취유인죄의 가중처벌을 규정하면서, 제6항에서 “제1항, 제2항 및 제4항에 규정된 죄의 미수범은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특가법 제5조의2와 대비하면서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의 상습절도미수에 대해 미수감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형식논리적으로 볼 때 본 판례의 결론은 일견 타당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종전의 대법원판례와 대비시켜 본다면 본 판례는 사실상 판례변경에 해당하는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은 1986. 3. 11. 선고 85도2831 판결에서 특가법의 상습절도미수 사안에 대해 형법 제26조의 중지미수 특례를 인정한 바가 있다. 이 판례에서 검사는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이 “형법 제329조 내지 제331조의 죄와 그 미수죄를 범하는 것 자체를 범죄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중지미수를 논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였다. 중지미수는 미수범의 한 형태이다. 중지미수를 논하려면 그 전제로 미수범 처벌규정이 있어야 한다. 85도2831 판례에서 대법원은 “중지미수에 관한 형법 제26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명문규정이 없는 한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 위반의 죄에 위 형법규정의 적용이 없다고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판시한 바가 있다. 미수범 처벌규정이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 속에 이미 들어 있음을 전제로 한 판단이다. 그런데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85도2831 판례에 나타난 검사의 주장과 동일한 논거를 채택하여 특가법상의 상습절도죄에는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판례변경의 절차를 밟지 않고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본 판례는 앞으로 엄형주의 형사사법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본 판례에서 문제된 특가법 제5조의4는 제6항에서 누범자에 대해 형의 단기를 2배로 가중하고 있다. 이 가중규정은 2005년 사회보호법을 폐지할 때 보완책으로 신설된 것이다. 한편 입법자는 2010년 4월 형법을 일부 개정하여 누범가중의 상한을 50년까지로 확장하였다(형법 제42조 단서). 개정 조문은 2011년 1월부터 발효되었는데, 만일 본 판례의 사안이 이 시점 이후에 일어났다면 피고인은 원칙적으로 무기 또는 6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될 것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형사처벌을 완충하는 장치로 형법 제53조에 기한 작량감경이 있다. 그러나 작량감경의 효과는 특가법 제5조의4 제6항이 규정한 단기 2배의 누범가중에 의하여 상쇄되어 하한은 여전히 3년의 징역이 된다. 이제 남은 방법은 법률상 감경을 추가하는 것인데, 대법원은 본 판례를 통하여 형법 제25조 제2항에 의한 미수감경의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엄형주의 형사사법 시대를 알린다고 볼 수 있는 본 판례가 판례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하급심을 지도하게 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85도2831 판례와의 어긋남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써 바로잡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7. 신상정보 공개명령과 고지명령의 법적 성질 (2011.9.29. 2011도9253, 2011전도152, 공 2011하, 2288)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아동 상대의 잔혹한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관련 법률들이 전면 개편되어 2010. 4. 15.자로 동시에 공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범죄자의 신상정보등록, 등록된 신상정보의 공개명령, 지역주민에의 신상정보 고지명령 등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개편된 법률 가운데 성폭력처벌법은 공포 후 1년 후부터 시행되는데(동법 부칙 1조), 신상정보의 공개나 고지는 시행 후 최초로 ‘공개명령 또는 고지명령을 선고받은 자’부터 적용된다(동법 부칙 2조). 이에 대해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되고(동법 부칙 1조), 공개명령이나 고지명령은 시행 후 최초로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를 범하여 공개명령 또는 고지명령을 선고받은 자’부터 적용된다(동법 부칙 2조, 3조). 갑은 2010. 9. 11.(특수강도강간), 2010. 10. 3.(특수강도강간미수), 2010. 10. 11.(절도강간미수) 성폭력범죄를 범하였다. 검사는 갑을 성폭력처벌법위반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아울러 공개명령과 고지명령을 선고하였다. 갑은 항소하였다. 항소심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비추어 성폭력처벌법의 시행일인 2011. 4. 16. 이후에 성폭력범죄를 범한 자부터 공개명령과 고지명령이 적용된다고 판단한 다음,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형만을 선고하였다. 검사는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전략) 신상정보의 공개명령 및 고지명령 제도는 성범죄를 한 자에 대한 응보 목적의 형벌과 달리 성범죄의 사전예방을 위한 보안처분적 성격이 강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특례법 제32조 제1항에 규정된 등록대상 성폭력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37조[공개명령), 제41조[고지명령]의 시행 전에 그 범죄를 범하고 그에 대한 공소제기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같은 법 제37조, 제41조의 시행 당시 공개명령 또는 고지명령이 선고되지 아니한 이상 같은 법 제37조, 제41조에 의한 공개명령 또는 고지명령의 대상이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성폭력범죄의 대책으로 도입된 등록정보 공개명령과 등록정보 고지명령의 법적 성질을 보여주고 있다. 성폭력처벌법과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은 성폭력사범에 대한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제·개정되어 같은 날 공포된 법률이다. 그런데 두 법률은 공개명령과 고지명령의 적용시점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내용의 경과규정을 두고 있다. 본 판례의 사안에서 항소심은 양자를 통일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성과 피고인에게 유리한 해석임을 논거로 들어서 공개명령과 고지명령을 선고한 제1심을 파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두 법률 사이에 문언의 차이가 있다는 점, 성인 대상 성범죄자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를 달리 취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신상정보 공개명령 및 고지명령은 형벌이 아니라 보안처분이라는 점 등의 논거를 제시하여 항소심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있다. 본 판례는 새로 도입된 공개명령과 고지명령이 보안처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동시에 경과규정에 이르기까지 입법과정에서 세심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함을 일깨워주는 예이기도 하다. |